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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선교사우수한 역량을 한데모아 환자가 믿고 찾는 병원, 즐겁고 행복한 병원

초대 원장 놀란(J.W. Nolan) 선교사 (1906~1907)

광주기독병원 초대원장인 놀란 선교사는 미국 루이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남장로교 한국 의료선교사로 1904년 8월 15일 한국에 도착하여 10월 20일부터 목포선교부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하였으며 1905년 11월 8일 광주에 도착한 놀란 선교사는 배유지 선교사의 임시사택에서 진료소 시설을 준비한 후 11월 20일 오후에 진료소 문을 열고 9명의 환자를 진료하였다.

놀란 선교사의 의료사역은 2년여에 불과하지만 그는 광주지역에서 최초로 현대 의료를 시작하여 무속과 주술적인 질병치료에서 과학적인 현대의학의 치료로 전환하도록 하였으며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위대하신 영적 의사인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등 진료를 통해 복음의 등불을 비추는 의료선교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열정적인 선교사였다.

애독 성경 :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이사야52:7)

제2대 원장 우월순(R.M. Wilsion) 선교사 (1908~1926)

우월순 선교사는 미국 워싱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08년 2월 미국 남장로교 한국 의료선교사로서 광주기독병원 2대 원장으로 의료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1911년에 이 지역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제중병원(Ellen Lavine Graham Hospital, 현재의 광주기독병원)을 건축하였으며 솜씨 좋은 외과의사로서 당시 미신과 주술적인 민간요법에만 의존하던 이 지역의 많은 환자들에게 수술적인 치료 등 더 발전된 현대적 의술을 시행한 이 지역 서양의학의 선구자였다.

우월순 선교사는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버림받고 무리지어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한센병 환우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광주시 봉선동에 한센환자 집단 거주지인 광주나병원을 건축하고 한센병은 완치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환우들을 치료하였다. 또한 이 집단 거주지 내에 학교를 세워 환우들의 문맹을 퇴치하고 성경공부를 시켰으며 완치된 환우들에게 노동력과 적성에 맞는 각종 직업교육을 시키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도록 자활의 길을 열어 주었다.

우월순 선교사는 정부의 한센환자 이주정책에 따라 1926년 여수시 율촌면(현재의 애양원)에 새로운 집단 거주시를 조성하고 이주하여 한센병 환우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우월순 선교사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인격의 소유자로서 부드러운 대화, 평온한 성격, 동정적이며 심오한 영성을 지닌 인물이었으며 실천적이며 도구를 잘 다루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여 광주지역 주일학교 책임자를 맡아 크게 부흥시켰다.

애독 성경: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 12:3)

제3대 원장 부란도(L.C Brand) 선교사 (1930~1937)

부란도 선교사는 데이비슨 대학과 버지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남장로교 한국 의료선교사로 1924년 11월 군산에 도착하여 구암리 병원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하였으며 1930년 8월부터 광주기독병원에서 3대원장으로 사역하였다.

부란도 선교사와 함께 광주제중병원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망국병으로 인식되던 결핵을 퇴치하는데 전념하였다. 그의 사역기간 중인 1933년 발생한 화재로 병원건물이 전소되었으나 부란도 선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광주시민과 교회, 병원은 제중병원을 재건축하는 일을 위해 연합하여 힘을 모으는 역사를 이루었다.

병원 재건축, 간호사 기숙사 신축, 효과적인 결핵치료를 위한 결핵전용병동 신축 등 병원 발전과 결핵퇴치를 위해 헌신하던 부란도 선교사는 1938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선교지인 광주제중병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한 알의 밀알로 양림동산에 묻혔으며 후일 고허번 선교사에 의해 살아있는 밀알정신으로 계승되었다.

애독 성경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10)

제4대 원장 존 프레스톤2세 (John Fairman Preston Jr.) 선교사 (1940)

프레스톤 선교사는 광주ㆍ전남지역에서 남장로교 선교사로 활동하던 변요한 목사(Rev. J. F. Preston)의 아들로 1909년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미국 데이비슨 대학과 듀크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남장로교 의료선교사로서 고향인 광주로 돌아왔다.

선교지에서 왕성한 사역을 하던 선교사의 자녀로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레스톤 선교사는 한국에 대한 지식과 문화, 언어, 당시 상황에 능통하였고 일본 의사면허증을 취득하였으며 부모로부터 확고하게 물려받은 선교비젼 등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모든 조건과 자질을 갖춘 선교사였다.

그는 순천 안력산병원에서 2년간 사역하면서 부란도 선교사 사후 의료선교사가 부재중이었던 광주제중병원에 자주 파견 진료를 다니다가 1940년 1월부터 광주제중병원에서 유능한 외과의사이자 병원 원장으로서 의료사역을 하였고 1940년 10월 일제에 의해 병원이 강제 폐쇄되면서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제5대 원장 고허번 (H.A. Codington) 선교사 (1951~1966)

광주의 성자 고허번 선교사는 미국 코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49년 미국남장로교 한국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였으며 1951년 9월 일제강점기에 폐쇄되었던 광주제중병원을 재개원하여 25년간 결핵환자를 치료하는데 헌신하였다.

그의 선교 사역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모든 것을 주는 선교였다.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웃에게 치료약과 먹을 것을 주었고 각종 구호물자로 빈민 구제에 나섰으며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식사, 옷 등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다.

둘째, 그 당시 우리 사회에서 보살피지 못하던 불구폐질자, 퇴원이후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결핵환자, 윤락여성 등을 위해 갱생원, 요양소 등을 건립하여 전도하고 그들의 재활을 돌보았다. 그의 이런 돌봄은 공동체 삶을 이끌었던 최흥종, 이현필, 정인세, 김준호 등, 이 지역 선각자들의 삶이 함께 하여 이루어졌으며 고허번 선교사의 나눔과 비움의 영성은 호남 기독교 정신의 큰 맥을 형성케 하였다.

셋째, 그의 모든 사역은 반드시 복음 전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매일 새벽부터 광주역, 윤락시설 등을 순회하며 전도지를 배포하고 복음을 전하였고 병원에서 환자진료를 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1951~1966년까지 광주기독병원 원장으로, 1967~1974년까지 결핵과 과장으로 사역하였으며 1974년부터 방글라데시 다카시의 통기진료소(Tongki Clinic), 텔레구진료소(Telegu Clinic) 등지에서 1999년까지 의료선교사로 헌신의 삶을 살았다.

고허번 선교사의 방글라데시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의 선교병원들이 1983년 KOMMS(한국기독교해외의료선교회)를 조직하고 1993년 꼬람똘라기독병원을 설립하여 선교비 지원과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으며 광주기독병원에서는 꼬람똘라 기독병원에 더욱 효과적인 복음 사역을 위해 ‘100주년기념 선교센터’를 건축하였다. 현재 방글라데시에는 이석로, 권대성, 정현균, 안은영 선교사 등 광주기독병원에서 수련받은 전문의사들이 고허번 선교사의 후예로 의료선교사역을 계승하고 있다.

애독성경 :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함은 죄니라" (약4:17)

제6대 원장 심부선 (Laurence Simpson) 선교사 (1966~1967)

심부선 선교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생으로 1954년 멜버른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수련을 받았으며 부인 마가렛과 함께 한국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였다. 1964년부터 광주기독병원에서 흉부외과 과장으로써 폐절제술 등 결핵환자 진료와 수술에 헌신하였다. 이전에는 광주기독병원에서 폐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전주예수병원으로 후송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심부선 선교사의 부임으로 인해 광주의 결핵환자들에게 더욱 빠르고 효과인 진료가 이루어졌다. 1966년부터 1967년 1월까지 6대 원장으로 사역하였다.

심부선 선교사 부부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 부부로 알려졌다. 그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하며, 능력 있고, 정열적이며, 신앙교육과 의료선교사로서 훈련이 잘 되어 있어 매사에 조화롭고 통찰력 있는 행동을 한 선교사였다.

제7대 원장 이철원 (R.B. Dietrick) 선교사 (1967~1976)

이철원 선교사는 미국 데이비슨 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외과전문의 수련과정을 마친 후 1958년 부인과 2명의 자녀와 함께 미국 남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였다. 1958.10월부터 1961년 8월까지 전주예수병원에서 외과과장으로 의료선교사역을 시작하였으며 1961년 9월 광주기독병원에서 외과과장(1961. 9~1967. 1), 원장(1967~1976. 4), 의료부장(1976.12 - 1985.12)으로 봉사하였다.

이철원 선교사는 훌륭한 외과의사였으며 탁월한 경영자였으며 교육자였다. 광주기독병원을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 재단에서 분리하여 독자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경영기반을 튼튼히 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발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진료과를 갖춘 종합병원으로 발전시켰고 의사교육기관(수련병원)으로 발전하여 체계적인 기독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기독교인 간호사 양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수피아간호학교’(현, 기독간호대학)를 설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치과 기공사 수련 제도를 도입하여 지역의 보건의료인 양성에도 기여하였다. 그리고 미국, 독일, 호주 등에 의사, 간호사, 행정직 등의 직원들을 보내 연수를 받게 함으로써 선진 지식을 빨리 접목하여 능률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지역사회의 보건사업에도 관심을 가진 이철원 선교사는 광주.전남지역의 무의촌 지역에서 꾸준한 순회진료, 모자보건교육, 전염병 예방교육 등을 실시하였으며 특히 소아마비로 인해 심각한 후유장애를 겪는 어린이들을 위해 소아마비 백신 63,000dose를 들여와 광주지역 어린이들에게 주사하여 소아마비를 퇴치시키기도 하였다.
1986년 선교사직을 은퇴하고 미국으로 귀국한 후에 ‘현대의학과 선교명령(Modern Medicine and the Mission Mandate)’ 등 저술을 통해서 선교사 지망생에게 소명의식을 갖도록 하였으며 2005년에 ‘광주기독병원100년사: 선교사시대’를 출판하였다.

애독성경 :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누가복음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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